손님들과 오디·매실 따고, 조개 캐… "시골에도 할 일 많아요"

나는 전북 부안군 진서면 진서리에 '팜스클럽'이라는 체험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농사보다 고객들에게 농촌 경험을 선사하는 공간이다. 젓갈로 유명한 곰소항이 내려다보이는 야트막한 산비탈을 끼고 있는 1만5000평(4만9500㎡) 농장에선 토종오디·산수유·매실·감·오가피·목련·철쭉·어성초·돼지감자·수박·고추 등 30여 종의 꽃과 나무·작물이 자란다. 손님들이 직접 감나무에도 올라가고, 매실도 따고, 대나무밭에 들어가 죽순을 캐어 가는 체험농장이다. 얼마 전에는 외국인 영어 강사들이 찾아와 농장에서 매실을 땄고, 인근 갯벌에서 조개도 캐다가 돌아갔다. 며칠 뒤에는 일가족 8명이 찾아오기로 했다. 도시에서 온 손님들에게 나는 오디 따는 법이나 죽순 캐는 법을 가르쳐 주고, 갯벌에서 조개 캐기도 함께 다닌다. 동네 사람들 물건을 사도록 주선도 해준다.

나는 지난 2003년 10월 KT에서 퇴직했다.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옛 한국통신에 입사해 전화를 연결해주는 전자교환실, 요금·전산을 관리하는 IT본부, 초고속인터넷을 개발·관리하는 초고속통신추진본부 등에서 27년간 근무했다. KT 역사상 가장 많은 5900여명이 한꺼번에 명예퇴직하던 그해 나도 퇴사했다. 명퇴 대상은 아니었지만, '내 사업'에 대한 꿈을 펼칠 기회라 생각하고 과감하게 사표를 던졌다.

나는 당초 생각보다 좀 더 빨리 농촌에 정착하기로 마음먹었다. 자식들은 이미 장성해서 부담이 덜했다. 본격적으로 귀농하기 앞서 전(前) 직장인 KT에서 운영하는 '시니어 창업스쿨'에서 귀농교육과 농산특산물 유통·마케팅 교육과정을 수료했다. 여기서 내가 낸 '팜스클럽' 사업계획서가 우수사례로 선정됐다. 한번 해볼 만하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리고 지난해 9월 전입신고를 마쳤다.

요즘 나는 마을에서 '인터넷 박사'로 통한다. 이 지역 특산물인 오디(뽕나무 열매)를 판매하는 인터넷 쇼핑몰을 마을 사람들한테 개설해준 것이 소문이 나 이것저것 전화로 물어오는 분들이 많다. KT에서 인터넷 관련 업무를 했고, 웹호스팅 업체도 운영했기 때문에 홈페이지를 만들거나 인터넷을 다루는 것은 나에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우리 농장 홈페이지(www. farmsclub.co.kr)에서도 마을 주민들이 생산한 제품을 판매한다.

내 계획은 우리 농장뿐 아니라 마을 전체를 '녹색체험 마을'로 만들어, 도시인과 귀농 준비자들이 찾아와 농촌을 경험하고, 농산물 직거래 장터도 운영하는 '도(都)·농(農) 교류'의 장으로 확대하는 것이다. 부안군에서도 내 계획에 큰 관심을 보이며 지난 2월 귀농창업자금을 지원해줬다. 인구가 점점 줄어드는 농촌 지역 지방자치단체에선 도시와 농촌을 잇는 '가교(架橋)' 역할을 해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다.

나름대로 거창한 꿈을 품고 시작한 제2의 인생은 결코 느긋한 삶이 아니다. 요즘도 나는 매일 아침 6시 하루를 시작해 오전 내내 연장을 싣고 농장을 돌며 작물과 나무를 가꾸는 노동으로 보낸다. 이번 장마가 걷히면 농산물 공판장도 만들어야 하고, 도시인과 농촌 사람들이 어울리는 문화공간도 갖춰야 한다. 귀농을 꿈꾸는 분들이 계시다면, 시골에 내려와 보니 할 일이 무척 많다는 것만은 내가 장담할 수 있다.

출처 : 조선일보 2011.07.14
[앙코르 내 인생] KT 퇴직한 뒤 전북 부안에 체험농장 연 박완순(56)씨